진격의 거인의 이야기 구조는 매우 흥미롭다.
과거와 미래를 하나로 잇는 시공간 장치를 통해
굉장히 고차원적고 다각화된 관람포인트와 여러가지 철학적 논의를 시도하는 작품처럼 보인다.
이 글은 전체적인 감상평이기에
장면장면마다의 감동과 실망은 쓰기 힘들어 대략의 맥락에서 서술해 놓았으니
양해 부탁드리며 시작한다.
이 작품의 주된 주제는 크게 몇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반전(反戰)
이 작품의 기저에는 일본이 경험한 전쟁에 트라우마가 깔려있다.
실제로 쓰나미 핵폭발 진주만 공습을 암시하는 수많은 장치가 있지만 필자가 보는 작가의 메세지는
'누구든 전쟁의 분명한 명분이 있다.
하지만 전쟁은 명백한 비극이다' 라는 것이다.
에렌은 자신만의 이유로 에르디아인을 제외한 모든 인류를 멸절하고 경계를 제거해 자유와 평화를 이루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살육이고 그것을 끝낼 수 있는것은 그를 가장 사랑한 미카사였다.
인류 역사를 볼때 전쟁은 사실 불가피 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르민이 그랬던것 처럼 전쟁을 피하도록 대화를 먼저 시도해야 하며
그 간격이 좁혀지지 않을때는 피해를 최소화 하는 방법으로 실행되어야 한다라는걸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두번째, 사랑의 형태에 대한 고찰이다.
이 극에서는 두명의 사랑이야기가 나온다.
유미르와 미카사.
선택지가 없는 복종적인 사랑을 하며 그 사랑 때문에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안에서 괴로워하는 유미르.
자발적으로 사랑의 대상을 선택하며 그 사랑의 대상이 비극의 원흉이 되었을때 스스로의 선택으로 사랑을 잘라내어 자유를 찾는 미카사.
사랑안에서 갇혀버린 유미르와
사랑의 철창을 잘라버린 미카사를 대치시킴으로
기다림과 복종의 사랑이
의지를 가진 결단으로 자신을 자유케하는 사랑을 봤을때의 해방감을 독자로 하여금 느끼게 한다.
즉 자신의 의지로 칼을들어 사랑의 종속과 속박을 끊어냈지만
죽은 에렌의 입술의 키스함으로서 자신의 사랑은 진짜였음을 증명하고 인정하는 장면에서
유미르는 눈물을 흘리며 사라지고 거인의 저주는 끝이 난다.
세번째, 자유와 선택이란 무엇인가.
작품이 시작될 때만 해도 이 극은 자유를 갈망하는 주인공이 자유를 찾아가는 내용인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 주인공은 매우 운명론적 삶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입장으로 전개된다.
작품 초반만 하더라도 주인공인 에렌은 자유를 갈망하는 빛나는 눈빛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레에 잠입하기 시작한 중반부 부터 그의 눈은 생기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죽은 눈빛으로 묘사된다.
그 자신의 미래를 이미 봤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모든 선택이 차단되어 결정된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본후 그에게 무슨 희망이 있었을까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반면 조사병단은 에렌의 입장과 거의 등치된다 싶을정도로 같은주제에 다른면을 보인다.
작품의 조사병단은 에렌의 상황과 정확히 반대이다.
자유로 반짝이던 에렌과는 달리 조사병단은 희망이 없는것처럼 보여졌다.
작전을 나갈때마다 사람이 죽고 작전으로 인해 얻는 정보는 극히 적거나 심지어 없는것처럼도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계속해서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이어 나가면서 성장한다.
갇혀있던 조사병단에게 자유는 없었지만 그들은 제한된 상황속에서 자유의지로 성장하여 결국 에렌을 죽인다는 선택으로 자신들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낸다.
네번째, 나를 나로 만드는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동안 나의 기억이 나를 나로 만든다 라고 생각했지만.
이 작품은 그것조차 의심하라고 한다.
엘렌은 거인의 힘을 계승하면서 집단적 기억에 속한 존재가 된다.
즉 개인의 자아가 아니라 집단적 정체성을 강요받는다.
그와 동시에 개인의 자유의지는 사라지고 정해진 길 외의 다른 선택지는 무의미하거나 존재하지 않게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도 기대도 불안도 사라지고 그저 깔린 기찻길을 달리는 기차가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엘렌을 엘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엘렌이 곧 그리샤고 그리샤가 곧 엘렌이지 않나? 엘렌이 프리츠 왕이고 프리츠왕이 그리샤일까?
기억이 나를 규정한다는 명제는 다른 예로도 깨질 수 있다.
파라디섬으로 스스로 유폐되어 자연소멸하기로 결정한 히스토리아왕은 시조의 거인 능력으로 파라디섬 안의 모든 에르디아인의 기억을 조작했다.
기억은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것이 진짜 내가 아닐 수도 있다.
독자는 "내가 기억하는 내가 진짜 내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지?"라는 질문을 작가로 부터 받게된다.
다섯번째, 역사의 되풀이(윤회)와 단절
역사라고 말하긴 했지만 역사라는 단어는 증오라고 치환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2000년간의 서사를 한 덩어리로 풀었지만 극 말미에 '2000년간의 이야기는 다시 되풀이 될 것이다.' 라는 여운을 남긴채 끝이 난다.
앞서 얘기한 반전의 메세지에서도 역사의 되풀이에 관한 내용을 도출 할 수 있는데.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인간은 전쟁을 피할 수 없다.
서로의 경험과 생각구조 결론 도출의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갈등을 이해하지 못하여 물리적 충돌이 생긴다. 그것이 집단적으로 발생하여 전쟁이 벌어지는데
이걸 막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결론은 나와 있다.
막을 수 없다.
다른 곳에서 다른 전쟁이 생길 것이다.
에렌은 이 모든 전쟁과 증오를 끊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그 나름대로 윤회를 끊기위한 파괴를 감행한다.
그래서 에르디아인을 제외한 모든 인간을 멸절하고 청소하고 싶었을테지만
그러면 인간은 전쟁을 멈추게될까?
그 세대에서는 어쩌면 전쟁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세대를 거듭하면서 에르디아 사회 내부에서도 또다른 갈등이 생겨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것이 너무나 자명하다.
결국 에렌 역시 파괴의 윤회에 사로잡힌 존재였던 것이다.
에렌이 파괴라는 반복을 행하고 있을때 그것을 끊어낸 것은 조사병단이던 미카사이다.
진격의 거인은 인류가 처음으로 역사의 반복을 거부한 이야기고 미카사의 결단은 처음으로 다른선택을 한 상징이 된다.
말하자면 이렇다
"사람은 다시 싸우겠지만 대화와 소통으로 희생을 최소화해 갈등을 해소하겠다. 파괴의 윤회는 끊어냈다"
여섯째, 선과악의 모호한 경계와 속죄의 방식
작 초반에 악은 거인들이고 성안의 사람은 악에게 잡아먹히는 피해자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 성안의 사람들도 오래전 마레인들을 학살하던 가해자였고.
악이라고 생각했던 거인들 그러니까 애니와 라이너도 결국엔 피해자였다.
약물을 주입당해 무지성 거인이 되었던 사람들도 결국은 피해자였다.
에르디아인들은 파라디섬에 자신들을 유폐한 마레인들을 악으로 규정하지만
그 마레인들도 2000년전에는 피해자였다.
지크는 에르디아인을 멸종시키는것이 선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행동은 영문을 모르는 에르디아인들에게 악이었다.
이는 파라디섬에 스스로를 유폐시킨 왕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자신의 죄를 느낀 주인공들이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방식도 각자 다르게 나타난다.
에렌은 파괴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지겠다 했고
지크도 에르디아인을 멸종시킴으로 자신들의 죄를 씻고자 했다
거인파 라고 할수있는 이 둘은 절멸의 방식으로 속죄하고자 했지만.
조사병단은 그들와 반대로
피해를 최소화 하면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방식으로 속죄하려했다
직접 만나 대화를하고 사과하며 진정성을 보여주는것이 피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속죄라고 생각했다.
일곱째, 신화적 구조와 종교적 상징
보통 작품에서는 인간이 가장 극단적인 공포와 불안한 배경에서 어떤 선택을 할것인가에 대한 주제를 얘기할때
전쟁을 그 배경으로하여 극단적인 상황을 세팅한다.
하지만 진격의 거인에서는 전쟁의 극단적 상황을 넘어서서 신화적인 구조를 채용해
인간세상에는 없을 신화적 공포와 불안을 그 배경으로 세팅한다.
유미르와 결합하는 할루시게니아는 최초의 존재 혹은 창조자 신
거인의 힘과 땅울림은 원죄의 시작 혹은 신의 심판이자 형벌 또는 묵시록
좌표는 영혼의 영역,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다차원의 세계
아커만 일족은 악마를 처단하는 천사의 모습
거짓 신(벽을 숭배하지만 그벽은 자신을 구속하던 거인이었던것)을 섬기는 허상에 집착한 우상숭배 집단 월교.
어덟째, 개인대 집단의 딜레마
개인과 집단중 어느 가치가 중요하냐에 대한 논쟁은
과거 여러 작품에서도 심지어 실제 역사속에서도 많이 벌어져왔고 벌어지고 있다.
에렌은 에르디아의 생존과 해방을 위해 세계전체를 희생시키는 선택을 한다.
비교적 작은 집단을 위해 큰 집단을 희생시킨 행동인데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과 자유를 위해 전세계를 희생시킨다.
반면 아르민과 조사병단은 집단안에서도 개인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들은 모든 집단이 공존할 수 있는 대화의 길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이 대립은 결국 에렌의 파괴적 결정과, 조사병단의 평화적 해결의 의지가 충돌하게 되는 중심선이 된다.
위와같이 여러가지의 주제로 이 작품을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 이 작품안에 대치되는 두종류의 집단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거인과 조사병단
즉 에렌, 그리샤, 지크의 거인파와 한지,아르민,미카사,리바이의 조사병단간의 대치이다.
조사병단과 에렌은 거의 완벽하게 등치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것 처럼 느껴졌다.
등치된 특징을 가지고 있는것과는 반대로 작중행보는 완전히 대치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같은특징을 가지는 다른 존재가 완전히 다른 길로 가는 몇가지 예시를 들어보겠다.
첫번째, 과거현재미래의 정보를 공유한다. 하지만 그 방식이 다르다.
거인 - 선대와 후대 거인의 기억은 후대가 선대를 잡아먹는 행위로 연결된다. (척수액을 통한 물리적 흡수)
조사병단 - 먼저 죽은 선대의 목숨으로 정보를 얻고 그 선대의 유지를 후대가 이어 나가는 방식으로 연결된다. (정신적 유산 선후대간 의식의 정신적 공유)
두번째, 미래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이 다르다.
거인 - 과거의 거인은 미래의 거인이 준 정보를 '꿈'이나 '기억'의 형태로 전달 (확정된 미래를 과거로 전달)
조사병단 - 과거 선대의 역사를 통해 '예측'하는 형태로 미래를 봄 (미래는 알 수 없지만 과거의 비슷한 사례를 참고하여 선택)
세번째, 자유를 갈망한다. 하지만 그걸 실현시키는 방식이 다르다.
거인 - 에렌은 에르디아인을 제외한 모든 인간을 죽이는 행위로 마레의 복수(2000년전 에르디아 왕국에 대한 복수)에 대한 복수를 실행한다. (멸절로 인한 경계 제거)
조사병단 - 아르민은 항상 대화를 우선시하고 어쩔 수 없이 사람이 다칠 수 있는 선택을 하면서도 그 책임을 항상 생각한다. (대화와 책임으로 인한 평화적 자유)
네번째, 거인과과 인간 모두 죽는다. 하지만 죽음을 대하는 각자의 인식도 다르다.
거인 - 에렌 즉 거인은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완수한 소모품으로서의 죽음 그러니까 전임자가 연소하고 후임자가 발아된다. (그렇게 될수 밖에 없다.)
조사병단 - 조사병단은 전임자가 자신의 인생으로 후임자에게 질문을 남기는 방식의 죽음. (나는 이렇게 선택했고 나를 본 너는 어떤 선택을 할것인가.)
다섯번째,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행동양식과 선택방향이 다르다.
거인 - 유미르는 자신을 학대한 사람에게 억압된 상황속에서 사랑을 선택할 선택지가 없는 복종적인 사랑을 시작한다.
(기다림과 복종의 구조) 사랑을 위해서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고 그 사랑이 오히려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미르 자신을 구속해 다시 복종의 억압으로 들어간다.
조사병단 - 미카사는 유년기부터 자발적으로 에렌을 사랑한다.
하지만 미카사 자신을 외면하고 시조의 거인이 되어 에르디아인을 제외한 모든 인류를 죽이는 파괴자가 된 에렌을 보면서
그는 자유의지로 에렌을 직접 죽임으로서 비극적이지만 자기 해방을 스스로 결정한다. (선택과 해방의 구조)
하지만 이런 다양한 주제를 가지는 와중에 잘 납득하기 힘들거나 부족해 보이는점 역시 존재한다.
첫번째,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과정에서 절정의 폭탄이 없다.
시작부터 거인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공포를 극대화 시켜서
도대체 이 거인은 왜 인간을 먹고 왜 배고픔을 느끼지도 못하는가? 왜 목뒷덜미를 깎으면 사라지는가? 라는 의문을 던저놓고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2000년전에 우물에 바진 유미르가 의문의 존재(할루시게니아를 닮은)와 융합해 거인의 힘을 가졌다는게 그 이유인데
증폭된 궁금증이 절정의 해소를 맞고 모든게 이해가되는 전개였다면 극의 완성도가 더 좋았겠지만
이 작품은 주인공을 극한의 환경에 내몰기위해 신화적 세계관을 채택하는 결정을 함으로서 그 맥을 빼버렸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것 같았다 "신화적 장치니까 그냥 그런거야 그런거니까 그냥 받아들여"
신화적 장치이기 때문에 신화적 해결을 했다라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여러 작품에서도 이런 신화적 장치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익숙하기도 하지만
그럴꺼면 왜 초반에 거인에 정체와 기원에 관한 의문을 마치 이 극의 핵심인것처럼 필요 이상으로 늘어놓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심지어 배고픔을 느끼지도 못하고, 평소에는 움직이지도 않으며, 목뒤를 잘리면 죽는다는 설정의 이유 조차 끝까지 설명하지 않았다.
두번째, 극이 가지는 분위기에 대한 원초적 불쾌함
작품 전반이 부정감정으로 가득 차있다. 절망, 운명, 죄의식, 자책, 책임, 고통등등
이는 현실적 고통과 철학적 사유를 유도하지만 지나치게 모든 부분에서 긍정의 여지 없이 파국으로 귀결되어
필요 이상의 감정적 소진을 유발한다.
자유를 외치던 에렌은 결국 에르디아인만의 자유를 선택해 모두를 학살하는 선택하고
유미르도 무려 2천년간 복종에 갇혀있다가 타인의 결단으로 수동적 구원에 그치고
조사병단도 반드시 누군가는 죽어야만 의미를 갖는다.
이와같은 구조는 기존의 클리셰를 무너트리는 설정이긴하지만
지나치게 감정의 피로를 유발시키기도 한다.
세번째, 시간여행의 역설의 과잉 사용
'좌표로 연결된 존재는 미래가 과거를 만들기도 한다'는 구조는 매우 흥미롭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장치가 극을 이해하는 핵심요소로 쓰이다보니
인물의 동기와 선택이 외부에 의해 조작되는 장면이 반복된다.
에렌의 모든 행동이 "봤으니까 한 거야"가 되어버리면
자유의지는 사라지고 철길을 따라가는 기차만 남게된다.
이 것이 반복되는걸 보면서 의도된 철학적 장치가 아니라
이 설정을 도구적으로 사용해 이야기의 구멍을 메꾸려는 단순한 회피수단처럼 보인다.
마치 신이기 때문에 모듯것이 가능하다는
데우스엑스마키나적 간편함을 보는것 같은 허망함을 느끼게 한다.
"캐릭터가 우연히 문제에 휘말리는 것은 좋지만, 그 캐릭터가 우연히 문제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반칙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이 상황에 쓸수있는 정확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좌표 라는 설정에 대한 거부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인간이 직감적으로 느끼는 과거 현재 미래의 흐름에 반하는
다차원적 세계관은 여러 작품에서 흥미롭게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 결론은 "어쨌건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로 정리되면서
우리가 가지고있는 직관적 인식을 망가트리지 않는 선에서 흥미를 유발하지만
이 작품처럼 극의 핵심을 파고드는 좌표라는 개념은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의 선택을 바꾼다가 핵심인 만큼 이 개념을 흐릿하게 이해를 하면서도
본능적 거부감을 야기시킨다.
이 개념을 쉽게 설명한다면 이렇다.
"엄미닭이 달걀을 낳는 것이 아니라, 이미닭이 아직 낳지않은 알에서 태어난 자식닭이 과거의 어미닭에게 자신이 태어날 알을 낳도록 하는것이다."
다차원에 대한 수많은 해석들을 봤지만 이처럼 기괴한 설정은 흔치않다.
네번째, 그래서 어쩌라는건가
작품은 내내 주인공에게 현실 이상의 신화적 시련을 주면서 극단으로 몰아 넣는 동시에
독자들까지도 함께 그런 감정으로 끌어당긴다.
자유와 선택으로 축약되는 극의 핵심 줄기에서
인물들이 멋진 선택으로 극의 부정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쾌감은 극 내내 발생하지 않는다.
극에서 계속해서 자유와 선택이라는 주제를 끊임없이 노출하지만 실제로는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는 선택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에렌은 자유를 꿈꿨지만 그 자유는 처음부터 없었다" 라는 역설은 좋은 주제지만
그것을 작품 전체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반전없이 늘어놓으면서
독자의 감정 몰입과 인물 응원 구조를 붕괴시킨다.
응원했던 주인공들은 대부분 죽는다.
결국 선택지가 없다는 전제 아래 자유의지 이야기를 한다는것은
의미 없는 철학놀음처럼 보일 위험이 크다.
작가는 그 긴장감과 부정감정을 극의 끝에 끝까지 유지시키다가 종막에 미카사가 에렌의 목을 베면서
해소감정을 폭발시키고 싶었던것 같지만
생각보다 그 해소감정은 폭발하지 않았다.
자유가 없는 선형화된 미래라고? 그래?
자유의지가 중요해? 근데 자유의지로 자신의 선택한 사람들은 다 죽어?
도대체 어쩌라는거지?
진격의 거인이란 작품은 완벽하지 않지만
완벽을 추구한 흔적이 매우 뚜렷한, 야심과 고민의 작품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감탄하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세계를 구하려던 소년이, 결국 자신도 구하지 못한 채 무너지는 비극이고
동시에, 한 명의 선택이 역사의 윤회를 끊어낸 최초의 신화다.
끊어낸 윤회도 반복되는가에 대한 여운을 극 마지막에 남기긴 했으나
이 작품은 여전히 자유와 선택에 대한 얘기로 가득하다.
이 여정은 감정적으로 혹독하고 철학적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으나,
지나친 구조적 설계와 부정감정의 과잉으로 인해 독자에게는 혼란과 피로감을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일까 이 작품은 확실히 강렬하고 오랜 여운이 남는 이야기다.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고, 잘라내고, 견디며 만들어지는 것임을
이 작품은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어서 이 작품에 대한 나의 평가를 마지막으로 마친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를 확정시켜놓은 후에 완성시킨 작품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꼼꼼한 수미상관적 구조,
복선을 숨겨놓고 회수하는 과정에서 독자들에게 쾌감을 주는 화려한 스킬들은 훌륭하지만.
극을 만든 구조에 구멍이 있고 독자의 감정을 몰고가는 능력은 극의 스케일에 비하면 미숙했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진격의 거인을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만화책보다는 애니메이션으로 보길 추천한다.
넷플릭스에서 보지말고 라프텔로 보는걸 추천- <<<<- 핵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