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진격거에서 철할적인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땅울림으로 비유되는 쓰나미, 핵폭발
진주만 공습으로 비유되는 마레 침투 작전등으로 볼때 이 작품이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불안함과
전쟁의 트라우마를 표현한 작품으로 보이는 면도 있는데 이에 대한 반전의 메세지를 어떻게 철학적으로 풀 수 있을까?
GPT :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진격의 거인』의 반전(反戰) 메시지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려면, 이 작품이 지리적 불안, 전쟁 트라우마,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일본의 정체성을 서사 구조와 은유를 통해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처럼 정리할 수 있습니다.
✅ 1. 반전 메시지의 철학적 기저 – "불가피한 폭력과 윤리적 주체성"
『진격의 거인』은 단순한 "전쟁은 나빠요"가 아닙니다.
오히려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인간은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는가라는 실존주의적 물음을 던집니다.
에렌의 땅울림은 **극단적인 "예방적 폭력"**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죠:
“나는 너희를 지우겠다. 그래야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다.”
즉, 그는 철저하게 수단의 도구화를 정당화합니다. 이는 마키아벨리즘, 또는 벤담의 공리주의와도 연결됩니다.
하지만 작중 반대편, 특히 아르민의 입을 통해 꾸준히 반복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일방적 폭력에 기대는 순간, 우리는 괴물이 된다.”
이는 칸트 윤리학의 핵심,
즉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철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 2. 에렌의 땅울림은 "비판받는 핵무기의 은유"
🎯 일본의 지정학적 트라우마와의 연결:
- 땅울림 = 핵폭발, 쓰나미, 혹은 진주만 복수의 상징
→ 세계를 파괴함으로써 섬나라(파라디)의 안위를 지키려는 선택 - 마레 침투 = 진주만 공습의 메타포
→ 일본이 '먼저 공격한' 서술을 통해 가해자 역할을 끌어안는 모순적 서사
즉, 이 작품은 **"우리는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전후 일본 사회의 윤리적 혼란을 그대로 재현합니다.
여기서 작가는 에렌에게 그런 복합적 정체성을 부여하면서
결국 **"폭력의 반복은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도출합니다.
✅ 3. 전쟁의 순환 고리를 끊는 방법 – 니체와 레비나스를 통한 해석
- 니체는 영원회귀를 말했죠.
→ 에렌은 바로 이 파괴의 영원회귀를 끊고자 했지만, 결국 또 다른 파괴의 반복이 되었습니다. - 하지만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사상에서 해답을 엿볼 수 있습니다.
“타인의 얼굴을 마주할 때, 우리는 윤리적 책임을 느낀다.”
미카사의 결단, 아르민의 설득은 바로 타인을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는 윤리적 각성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반전의 철학적 메시지입니다.
✅ 4. 『진격의 거인』의 반전 메시지는 다음처럼 요약될 수 있습니다
| 땅울림 | 억압받던 집단이 가해자가 될 수 있음. 복수는 다시 폭력을 부른다. |
| 마레침투 | 정의라는 이름으로 선제공격이 이뤄질 때, 도덕적 우위는 붕괴된다. |
| 에렌의 파괴 | 운명론적으로 몰린 선택이더라도, 인간은 윤리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
| 조사병단의 저항 | 인간은 절망 속에서도 타자와의 대화를 통해 윤리적 선택이 가능하다. |
✅ 마무리 정리
『진격의 거인』의 반전 메시지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그리고 폭력과 피해의 윤리적 딜레마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탐구입니다.
- 폭력은 피해자를 만들고, 피해자는 다시 폭력의 씨앗이 된다.
- 그 순환을 끊는 유일한 방법은 “타인의 고통을 들을 용기”이다.
- 그리고 그 용기는 윤리와 공감, 선택의 의지에서 시작됩니다.
Q : 마키아 벨리즘 공리주의는 개인행복의 총량이 높을수록 옳은 선택이고 그 선택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 방법이건 상관이 없다.
무조건 행복이 높아지는 쪽의 선택이 옳다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에르디아인을 제외한 모두를 죽이는게 개인행복의 총량이
높아지는 방법일까? 아님 애초에 에르디아인을 제외한 다른사람들은 사람취급도 안한걸까?
GPT :
이건 단순히 윤리학의 문제를 넘어서, 『진격의 거인』이 제시하는 인간관과 에렌의 인식구조,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누가 인간인가"에 대한 정의의 충돌과 맞닿아 있는 논점입니다.
당신이 제기한 의문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어요:
에렌은 ‘에르디아인을 제외한 모두를 죽이는 선택’을 했는데,
이건 공리주의적으로 봐도 개인행복 총량을 높이는 선택이 아니지 않나?
그럼 그는 누구를 ‘행복을 느끼는 존재’, 즉 인간으로 여겼던 걸까?
이걸 철학적으로 풀어보죠.
1. ✅ 에렌의 공리주의는 일반적 공리주의가 아니다 – '편향된 공리주의'
▸ 일반 공리주의 (벤담/밀):
- "행복의 총량" = 모든 존재의 고통과 쾌락을 더한 것.
- 누구의 행복이건 간에, 모든 존재가 동등한 가치를 가짐.
하지만 에렌은 이 원칙을 따르지 않아요.
그의 공리주의는 이렇게 보입니다:
“에르디아인의 행복만이 중요하다.
그 외 존재의 고통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건 철저하게 집단주의적, 종족주의적 공리주의에 가깝습니다.
즉, "우리는 행복할 자격이 있지만, 그들은 아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철학사에서 이런 입장은 사실상 "선택적 인간주의", 또는 **"비윤리적 공리주의"**로 분류되기 때문입니다.
2. ✅ "인간은 누구인가?" – 공리주의의 전제가 흔들릴 때 생기는 문제
공리주의는 모든 사람의 행복을 고려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작동합니다.
하지만 『진격의 거인』에서 에렌은 '모든 사람'의 범위를 축소시킵니다.
에렌은 다음처럼 생각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마레는 에르디아인을 짐승 취급한다.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 그들은 결국 우리를 멸종시키려 든다.
-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보다 먼저 살아남아야 한다.
- 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건, 그들이 먼저 했던 일이다.
즉, 에렌은 공리주의의 범위 자체를 좁혀서,
'에르디아인만을 인간으로 간주하는 폐쇄된 도덕공동체'를 설정한 셈입니다.
이건 역사적으로 아주 위험한 사상입니다.
실제로 **제노사이드(집단학살)**를 저지른 많은 이들이
비슷한 논리를 가졌습니다.
3. ✅ 그렇다면 에렌의 행동은 공리주의적일까?
정답은 **“아니요, 왜곡된 공리주의이며, 오히려 마키아벨리즘에 가깝다”**입니다.
- 마키아벨리즘은 이렇게 말하죠:
- "국가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잔혹함도 도덕이 된다."
에렌은 국가(또는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서
거대한 도구적 살육을 감행합니다.
하지만 이건 행복의 총량을 고려했다기보다,
**“우리의 생존이 정의다”**라는 권리의 우선권 주장이 더 가깝습니다.
4. ✅ 에렌은 타인을 인간으로 여겼는가?
에렌은 인간은 모두 자유로워야 한다고 외치던 소년이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우리’를 위해 ‘그들’을 죽여야 한다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건 진심으로 그들을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았거나,
그들이 인간이라도 우리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즉, 에렌의 심리 안에서는 다음과 같은 변형된 공리가 작동한 셈이죠:
"모든 인간은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우리(에르디아인)만을 말한다."
🧠 마무리 철학적 요약
| 인간의 범위 | 모든 사람 | 에르디아인 중심 |
| 행복의 정의 | 고통의 최소화와 쾌락의 극대화 | 생존의 확보가 최우선 |
| 폭력의 정당화 | 행복 총량이 올라갈 때 가능 | 우리만 남으면 그 자체로 OK |
| 도덕적 오류 | 비차별적 고려를 전제 | 타인을 수단화 (비윤리) |
| 철학적 모델 | 벤담, 밀 | 마키아벨리, 니체(의지주의) 혼합 |
✍️ 결론
에렌의 선택은 철저히 윤리적 실패이며,
그의 ‘공리주의’는 좁혀진 시야 속에서 왜곡된 생존주의로 읽히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진격의 거인』은 이 모순을 통해 다음 질문을 던지는 셈이죠:
"당신이 소중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세상을 파괴할 수 있다면,
그때 당신은 과연 인간인가, 아니면 괴물인가?"
이 질문이야말로, 작중 아르민이 끊임없이 던지는 외침과 연결되는 철학적 중심이기도 합니다.
Q : 진격거를 해석하는 사람들중 일부는 에렌이 결정론에 갇혀서 정해진 길을 따라간것 처럼 보이지만, "그가 윤회의 마지막 존재이기에 가능했던 과거를 결정하는 암시를 전대에게 심어줄 수 있었고, 결국 전대에게 심어줄 메세지는 윤회의 마지막 존재인 에렌의 선택이다." 라는 해석이 있는데 이를 방금 얘기한 공리주의와 마키아벨리즘에 연결해 보면 에렌은 다수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모두를 죽이고 본인이 살해 당하는 것까지 선택해서 윤회를 끊어 냈다고 볼 수 있는데, 윤회를 끊기 위해서 그렇게 극단적인 수단까지 써야 했을까가 의문이야 자신이 마지막 존재로서 윤회를 끊고 싶었다면 독약을 마시든 13년이 지날때 까지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 될 일이 아니었나? 아니면 그의 내면에 악의나 복수심이 발동했다고 봐야 할까? 에렌의 땅울림을 너무 선하게 해석하는 일각이 있어서 이에 대한 GPT의 생각을 묻고 싶은데
GPT :
당신이 지금 짚은 논점은 『진격의 거인』의 해석 중 가장 민감하면서도 철학적으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요약하면 이렇게 묻고 있는 거죠:
“에렌은 윤회의 마지막으로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그는 그렇게 파괴적인 길을 택했는가?
그걸 선의라고 볼 수 있는가? 오히려 악의이자 복수 아닌가?”
이 문제를 정리해서 답해볼게요.
세 가지 층위로 나눠서 보겠습니다.
1. 🔁 윤회를 끊기 위한 극단의 폭력은 정당한가?
에렌의 선택을 긍정하는 쪽은 이렇게 말하곤 해요:
“에렌은 윤회의 마지막 시조였다.
그래서 과거를 결정할 수 있었고, 결국 땅울림과 죽음을 통해
모든 악순환을 자신으로 끊었다.”
그들은 에렌을 윤회의 희생양, 혹은 성자적 폭력자로 읽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수단의 윤리성이죠.
에렌은 수천만 명을 땅울림으로 학살합니다.
즉, 윤회를 끊는 수단으로 전 지구적 대량학살을 택한 겁니다.
❗ “윤회를 끊기 위해 학살이 정당화되는가?”
이건 공리주의적으로도, 실존주의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전제예요.
왜냐하면:
- 그 자체가 폭력의 윤회에 참여하는 것이고,
- “큰 목적을 위해 누구든 죽여도 된다”는 파시즘적 논리와 구조가 같기 때문이에요.
2. 🧨 왜 13년을 조용히 살다 죽지 않았는가? – 정당한 질문
당신이 정확히 짚었듯,
윤회를 끊고 싶었다면 에렌은 그냥 13년을 기다리기만 하면 됐어요.
왜 안 했을까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어요.
▸ ① 그는 정말로 복수하고 싶었다.
- 어머니를 잡아먹은 거인.
- 동료를 죽인 마레.
- 차별받는 엘디아.
→ 이 모든 원한이 뭉쳐진 감정이 냉정한 판단을 뒤엎었을 수 있어요.
“그냥 조용히 죽는 건 너무 억울해.”
“너희도 느껴봐야 해.”
이건 니체적인 복수심의 철학이고,
심지어 작중 지크조차도 에렌에게 *“너는 어릴 적 그날부터 변한 적 없어.”*라고 말하죠.
▸ ② 그는 애초에 ‘자유’를 원했지, 윤회의 종료를 목표로 한 건 아니었다.
- 자유를 꿈꾼 에렌은 자신의 선택지를 본 후에
“그럼 내가 이 길을 가야겠네.” 라고 받아들인 것뿐이에요.
즉, **“윤회를 끊어야 하니까 이 길을 택했다”**가 아니라
**“이게 내가 가고 싶은 길이었고, 그 길이 윤회를 끊게 된 것”**에 가까워요.
→ 목적이 ‘윤회 단절’이었다면 더 비폭력적 수단이 분명 존재했을 겁니다.
(예: 시조 유미르를 설득해 거인의 힘을 스스로 소멸, 좌표 봉인, 자살, 시간 단절 등)
3. 🤔 마키아벨리즘 vs 공리주의적 정당화?
▸ 공리주의 정당화가 가능한가?
어려워요.
수천만 명을 죽이고, 파라디 섬조차 후속 전쟁으로 타격을 입었다는 점에서
에렌의 땅울림은 결과적으로 행복 총량을 늘리지 못했어요.
→ 공리주의는 **"결과로 평가"**하는데,
그 결과는 비극 + 비극이었기 때문에 정당화되기 어렵습니다.
▸ 마키아벨리즘적 정당화?
좀 더 가까워요.
에렌은 이렇게 생각한 셈이죠:
“나를 희생시켜 모두의 증오를 끌어안고
내가 죽음으로써 평화를 만들겠다.”
→ 이건 "스스로 괴물이 되어 세상을 지키는" 영웅서사의 전형이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그 길밖엔 없었는가?” 라는 질문에는
절대적인 ‘예’는 어렵습니다.
🧠 결론 – 당신의 직감은 정확합니다.
에렌을 윤회를 끊는 선택자로 보며 미화하는 시각은
일종의 비극적 영웅서사 미학에 가까워요.
하지만 이 선택이 철학적으로 **정당한가? 인간적인가? 옳은가?**라는 질문에는
아래처럼 정리할 수 있어요:
✅ 정리
- 에렌은 결정론에 갇힌 존재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시조로서 과거 개입을 가능케 했기에 사실상 선택권이 있었다. - 하지만 그는 자신이 당한 고통과 복수를 감정적으로 투사했고,
윤회를 끊는다는 ‘대의’로 자신의 학살을 정당화했을 뿐이다. - 그는 공리주의적 선택자도 아니었고,
다만 마키아벨리적인 **‘필요한 괴물’**을 자처한 셈이다. - 다만, 괴물이 스스로 괴물임을 자각하고, 죽음을 택했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구원 없는 속죄, 윤회에 맞선 실존적 저항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 시각은 비판과 수용 사이를 균형 있게 잡고 있어서,
당신이 고민하고 있는 철학적 글에 중심축으로 삼기에 충분한 분석이라고 생각해요.